GBS-1Kings-1.아도니야가 스스로 높여서 이르기를 내가 왕이 되리라 하고(왕상1:5)
제1과
공부할 내용: 열왕기상 1장 1-10절
1.다윗 왕이 나이가 많이 들었을 때에, 이불을 덮어도 따뜻하지 않았습니다. 다윗의 노년의 이러한 상태가 우리들에게 주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왕상1:1, 전12:1,6-7)
답)매튜핸리주석-사무엘하 마지막 장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다윗은 하나님의 큰 자비로 멸망의 천사의 칼을 피했다. 그러나 우리는 병이나 위험으로부터 구원받는 것은 단지 집행유예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설령 촛불이 바람에 의해 꺼지지 않았다 할지라도, 조만간 그것은 스스로 꺼질 것이다. 우리는 여기에서 다윗이 세월에 의해 노쇠해지고, 결국 무덤의 문턱에 이르게 된 것을 보게 된다. 함정에서 나오는 자는 올무에 걸리리니(렘48:44), 이렇든 저렇든 우리는 결국 죽음을 향해 달려간다. 1.우리는 여기에서 너무도 노쇠하여 쇠약해진 다윗을 보게 된다. 그는 늙어 체온이 떨어짐으로써 이불을 덮어도 따뜻하지 않았다(1절). 다윗은 용맹하며 활력이 넘치며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의 가슴에는 항상 열정의 불꽃이 타오르고 있었다. 그러나 이제 그의 피는 싸늘하게 식었고 생기는 떨어졌다. 따라서 그는 이제 자신의 침상에 누워 있을 수밖에 없게 되었으며, 그 곳에서조차도 따뜻함을 얻을 수 없었다. 그는 지금 70세였다. 많은 사람들은 그 정도 나이에서도 활발하게 자신의 일을 수행한다. 그러나 지금 다윗은 예전의 죄들로 인해, 특별히 우리아와 관련한 죄로 인해 징벌을 받고 있었다. 괴로움과 곤궁에 있어 젊은 시절에는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지내왔지만, 그러나 지금은 그 무게가 결코 가볍지 않았다. 강한 자는 자기의 힘을 자랑하지 말찌니라. 그 힘은 곧 병으로 미약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설령 그렇게 되지 않는다 할지라도, 결국은 세월에 의해 쇠약해지고 말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청년의 때 곧 곤고한 날이 이르기 전에 창조주를 기억해야 한다(전12:1). 만일 우리의 손이 하나님과 우리 영혼과 우리 세대를 위해 무엇을 할 것인지 발견했다면, 모든 힘을 다해 그 일을 수행하자. 왜냐하면 아무 일도 할 수 없는 노년의 밤이 곧 올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힘이 쇠잔해졌을 때 우리가 젊은 날의 힘을 올바로 사용했다고 회상할 수 있다면 그것은 우리에게 큰 위로가 될 것이다.
2.이불을 덮어도 따뜻하지 않은 다윗 왕을 위하여, 신복들이 생각해 낸 처방은 젊은 여자 하나를 구하여 왕의 품에 눕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이스라엘 사방 경내에 아름다운 젊은 여인을 찾다가 드디어 심히 아름다운 수넴 여자 아비삭을 얻어서 다윗 왕에게 데려왔습니다. 아비삭이 다윗 왕을 봉양하며 수종하였으나 왕이 더불어 동침하지는 않았습니다. 여기서 다윗 왕의 신복들이 내린 처방이 과연 옳은 것인지를 서로 대화해 보십시오. (왕상1:2-4, 마19:5, 고전7:1)
답)매튜핸리주석-2.다윗의 시종들은 왕의 고통을 경감시키기 위해 외적인 처방밖에는 할 수 없었다. (1)그들은 왕에게 이불을 덮어 주었다. 만일 다윗의 몸에 어느 정도 온기가 있었다면, 그와 같이 함으로써 그의 온기를 보존하고 그럼으로써 그로 하여금 따뜻함을 느끼도록 해 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몸에 아무런 온기도 남아 있지 않았기 때문에 그와 같은 방법은 아무 소용이 없었다. 엘리후는 의복이 어떻게 우리를 따뜻하게 해 주는지 그 이유를 알기 어렵다고 말했지만(욥37:17), 그러나 만일 하나님이 축복을 거두시면 설령 많은 옷을 입는다 할지라도 따뜻함을 얻지 못하게 된다(학1:6). 지금 다윗이 그러했다. (2)그들은 어리석게도 왕에게 혼례를 권했다(2-4절) - 사실 다윗에게 있어 지금 필요한 것은 장례를 준비하는 것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인간의 타락한 욕망을 만족시켜 주는 방법을 잘 알고 있었으며, 따라서 왕의 건강을 보살핀다는 핑계 아래 왕의 타락한 욕망을 만족시켜 주고자 하였다. 그들은 이러한 문제와 관련하여 마땅히 왕의 선지자들에게 물었어야 했다. 그렇지만 어쨌든 당시에는 이러한 일이 쉽게 받아들여질 수 있었다. 왜냐하면 선한 자들까지도 여러 아내를 두곤 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는 그와 같이 행해서는 결코 안 된다. 왜냐하면 우리는 그리스도로부터 한 남자는 오직 한 아내만을 가져야 한다는 분명한 가르침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마19:5), 나아가서 남자가 여자를 가까이하지 아니함이 좋다는 가르침까지도 우리에게 주어져 있기 때문이다(고전7:1). 아비삭은 다윗의 품에 눕기 전에 그와 결혼하여 그의 첩이 되었다. 그러한 사실은 다윗이 죽은 후 아도니야가 아비삭과 결혼하기를 원한 것이 큰 죄로 간주된 사실에서 분명하게 나타난다(2:22).
3.다윗의 아들 아도니야는 어린시절에 다윗으로부터 “네가 어찌하여 그리하였느냐”라는 말을 한 번도 듣지 않았습니다. 그러한 그가 다윗이 늙어 침상에만 있게 되었을 때에 부친을 무시하고 왕이 되고자 하였습니다. 그는 자신의 야심을 성취하기 위하여 병거와 기병과 호위병을 준비하였고 또 군대장관 요압과 대제사장 아비아달을 자신의 편으로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예루살렘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에느로겔에서 큰 잔치를 베풀면서 왕의 권력을 탈취하려고 하였습니다. 아도니야와 그의 야심에 동조한 자들의 어리석음에 대하여 생각하고 서로 토론해 보십시오. (왕상1:5-10, 롬16:18)
답)매튜핸리주석-다윗은 자녀들로 인해 많은 고통을 겪었다. 그 가운데서도 가장 큰 고통을 가져다준 자들은 첫째 아들 암논과 셋째 아들 압살롬이었다(삼하3:2-3). 반면 아비가일로부터 낳은 둘째 아들은 그에게 별다른 근심이 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다윗의 넷째 아들은 아도니야로서(삼하3:4), 헤브론에서 태어난 아들들 가운데 하나였다. 우리는 지금까지 그와 관련하여 어떤 이야기도 듣지 못했다. 이제 여기에서 비로소 그에 관하여 듣게 되는데, 그는 용모가 준수한 사람이요 나이에 있어서나 기질에 있어서나 압살롬 다음 가는 사람이었다(6절). 아버지의 눈에 그는 지금까지 보배 같은 아들이었지만, 이제는 가시가 되고 말았다. I.다윗은 아도니야를 지나치게 관대하게 키웠다(6절). 그는 한 번도 아도니야를 섭섭하게(displeased) 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아도니야가 그의 아버지의 마음을 한 번도 상하게 하지 않았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 아마도 아도니야는 종종 자기 아버지의 마음을 상하게 하는 행동을 했을 것이며, 다윗은 그의 그릇된 행동으로 인해 마음 상해하면서 은밀히 하나님 앞에 탄식했을 것이다. 그러나 다윗은 그의 기분을 상하게 한다든지, 그가 마음먹고 있는 일을 허락하지 않는다든지, 그가 한 행동에 대해 책임지도록 한다든지, 그의 행동을 감시한다든지, 그의 잘못된 행동에 대해 꾸짖는 등으로 그를 섭섭하게 하지 않았다. 다윗은 아도니야에게 “네가 어찌하여 그리하였느냐?”는 말을 하지 않았다(꾸짖지 않고는 결코 지나칠 수 없는 상황에서조차도). 아버지의 책망을 섭섭하게 여기며 모욕으로 받아들이면, 그것은 아들의 잘못이다. 그와 같은 아들은 책망의 유익을 잃어버리게 될 것이다. 반면 아들이 섭섭하게 생각할까 염려하여 책망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아버지의 잘못이다. 이제 다윗은 아도니야를 버릇없이 키운 것으로 인한 고통을 스스로 받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자기 아들을 하나님보다 더 중히 여기는 자는, 선한 교훈으로 양육하지 않는 자와 마찬가지로, 그 아들로부터 기대할 수 있는 존귀를 스스로 잃어버리게 되고 말 것이다. II.이에 아도니야는 자기 아버지를 무시했다. 지금 그의 아버지는 늙고 침상에만 있었기 때문에, 그는 아버지의 존재 따위는 무시해 버리고 스스로를 높이면서 내가 욍이 되리라고 말했다(5절). 버릇없이 자란 아이들은 쉽게 교만과 야심의 노예가 되는 법이다. 이로써 얼마나 많은 젊은이들이 멸망에 빠지고 말았는가! 자기 자녀를 겸손하게 기르고자 한다면, 부모는 마땅히 그들을 통제해야만 한다. 여기에서 아도니야의 오만함을 관찰해 보자. 1.그는 아버지의 죽음이 임박했다고 생각하고는 자신이 아버지의 왕위를 계승하려고 생각했다. 그는 자신의 아버지와 하나님이 왕위계승자로서 지명한 자는 솔로몬이란 사실을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했다.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다윗이 그 사실을 공적으로 선포했으므로 솔로몬의 왕위계승권은 이미 확정된 사실이었다(대상22:9,23:1). 그러나 아도니야는 하나님과 자기 아버지의 뜻을 무시하고 스스로 왕위계승권을 탈취하고자 시도했다. 이와 같이 많은 사람들이 “우리는 그가 우리를 다스리는 것을 원치 아니하노라”라고 말하면서 그리스도의 통치를 대적한다. 2.그는 아버지가 노쇠하여 아무 일도 할 수 없게 되었다고 생각하고는 즉시 자신이 보좌를 차지하려고 생각했다. 그는 자신의 아버지가 죽기까지 기다릴 수 없었으며, 지금 당장 “아도니야가 왕이 되었다”(18절) “아도니야 왕은 만세수를 하옵소서”(25절)라는 말을 들어야만 하였다. 그의 아버지는 너무 늙었으므로 통치하기에 적합지 않았으며, 동생 솔로몬은 너무 어렸으므로 역시 그러했다. 따라서 왕권은 마땅히 자신에게 돌려져야만 했다. 자녀에게 있어 부모가 노쇠했다고 하여 부모를 모욕하는 것은 너무도 악하고 야비한 일이 아닐 수 없다. 3.이러한 야심에 따라, (1)아도니야는 병거와 기병과 호위병을 준비했다(5절). 그들은 아도니야를 수행하며 그를 위해 싸울 자들로서, 그의 힘과 위용을 과시하기 위한 것이었다. (2)아도니야는 군대 장관 요압과 대제사장 아비아달을 자신의 편으로 만들었다(7절). 아도니야가 이들을 회유한 것은 하등 이상한 일이 아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군대와 교회에 큰 영향력을 가진 자들로서 자신에게 큰 도움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이 어떻게 해서 아도니야를 따르고 협력하게 되었는지는 참으로 이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들은 나이가 많은 자들로서 다윗 시대의 고난과 난관을 함께 헤쳐 나갔던 충성된 자들이었으며, 누가 보더라도 쉽사리 감언이설에 속아 넘어갈 자들이 아니었다. 그들이 아도니야를 지지한다고 하여 별다른 이득이 있을 것도 아니었다. 왜냐하면 그들은 이미 가장 높은 지위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왕권이 솔로몬에게 계승되는 것을 모를 수 없었다. 그들은 그것을 자신들 마음대로 바꿀 수 있는 권한이 없었으며, 따라서 그들로서는 그대로 따르는 것이 스스로에게 유익한 일이었다. 그러나 이 일에 있어 하나님은 그들을 그냥 내버려 두셨다. 아마도 그것은 그들이 예전에 행했던 어떤 잘못된 행동들로 인해 그들을 징계하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반면 사독과 브나야와 나단은 다윗에 대한 충성심이 철저했기 때문에, 아도니야로서도 그들을 자신의 계획에 동참하도록 설득할 확신을 갖지 못했다(8절). 오직 선한 일만을 따르고자 하는 확고한 의지를 나타내는 자들은 악한 일에 동참하도록 유혹받지 않는 법이다. (3)아도니야는 예루살렘에서 그리 멀지 에느로겔에서 큰 잔치를 배설했다(9절). 그리고 그는 왕자들과 왕의 신하들을 초대하여 크게 대접하면서 그들을 자신의 편이 되도록 회유했다. 그러나 솔로몬은 초대하지 않았는데, 그것은 그를 경멸했기 때문이거나 아니면 단념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10절). 이들은 자신들의 배만 섬기는 자들로서 어느 쪽이든 자신들을 후히 대접하는 자들의 편이 되기를 좋아하며, 결국 유혹자의 손쉬운 먹잇감이 되고 만다(롬16:18). 어떤 이들은 아도니야가 양과 소와 살찐 송아지를 잡은 것은 제사를 드리기 위한 것이었으며 따라서 그가 배설한 것은 종교적인 잔치였다고 생각한다. 만일 그렇다면 그는 경건의 모양을 빙자하여 권력찬탈을 시도한 것이다 – 압살롬이 서원을 빙자하여 그렇게 했던 것처럼(삼하15:7). 그 자리에 대제사장이 있었으므로 그는 더욱 그럴듯하게 일을 꾸밀 수 있었을 것이다. 이와 같이 종교적인 규례를 빙자하여 악을 꾸미는 것이나 혹은 주의 이름으로 악을 행하는 것은 참으로 서글픈 일이다.
*참고성경구절
전12:1 너는 청년의 때 곧 곤고한 날이 이르기 전, 나는 아무 낙이 없다고 할 해가 가깝기 전에 너의 창조자를 기억하라
전12:6-7 은줄이 풀리고 금그릇이 깨어지고 항아리가 샘 곁에서 깨어지고 바퀴가 우물 위에서 깨어지고 흙은 여전히 땅으로 돌아가고 신은 그 주신 하나님께로 돌아가기 전에 기억하라
마19:5 말씀하시기를 이러므로 사람이 그 부모를 떠나서 아내에게 합하여 그 둘이 한 몸이 될찌니라 하신 것을 읽지 못하였느냐
고전7:1 너희의 쓴 말에 대하여는 남자가 여자를 가까이 아니함이 좋으나
롬16:18 이 같은 자들은 우리 주 그리스도를 섬기지 아니하고 다만 자기의 배만 섬기나니 공교하고 아첨하는 말로 순진한 자들의 마음을 미혹하느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