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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할 내용: 열왕기상 854-66

 

 

1.솔로몬이 긴 기도와 간구를 마친 후에 여호와의 단 앞에 서서 큰 소리로 이스라엘 온 회중을 축복하였습니다. 그러면서 솔로몬은 여호와를 찬송할찌로다 저가 무릇 허하신대로 그 백성 이스라엘에게 태평을 주셨으니 그 종 모세를 빙자하여 [그 종 모세를 통하여] 무릇 허하신 그 선한 말씀이 하나도 이루지 않음이 없도다라고 말하였습니다. 여기 솔로몬이 이스라엘 백성을 축복하는데 있어서 가장 먼저 한 일은 하나님을 찬송하는 것이었습니다. 여기서 우리들이 배울 수 있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왕상8:54-56, 6:33, 11:36)

)매튜핸리주석-전도서에서 솔로몬은 자신의 긴 설교를 마친 후 모든 일에 대한 결론을 제시한다. 그와 마찬가지로 그는 여기에서 긴 기도를 마친 후 백성을 축복하는 것으로 결말을 짓는다(55). 그는 권세자로서 서서 축복했는데, 그것은 백성들로 하여금 더 잘 들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그의 말은 더할 나위없이 적절하고 타당했다. 그의 말은 너무도 감동적이었기 때문에 회중은 흩어지지 않고 모두 귀를 기울여 경청했다. I.솔로몬은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위해 행하신 큰 일들로 인해 그분께 영광을 돌린다(56). 그는 회중을 축복하기 위해 일어났지만(55), 그러나 먼저 하나님을 송축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이와 같이 우리는 모든 일에 있어 먼저 하나님께 감사를 드려야만 한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위대한 일을 이루어 주시기를 기대하는가? 그렇다면 그 때 그 때마다 부딪치는 상황들을 하나님을 찬송하는 기회로 삼자. 솔로몬은 이스라엘에게 태평을 주신 하나님을 송축한다. 그는 재물이나 명예나 권세를 언급하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그런 것들보다 태평(안식)을 더 큰 축복으로 여겼기 때문이었다. 태평(안식)을 가진 자들은, 설령 다른 것들은 좀 부족하다 하더라도, 그 축복을 평가절하해서는 안 된다. 솔로몬은 하나님이 베푸신 축복을 예전에 그들에게 주신 약속과 비교하는데, 그것은 그렇게 함으로써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말씀의 진실성이 온전히 드러나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1.솔로몬은 모세를 통해 주신 약속들을 언급한다(56).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 교훈뿐만 아니라 약속도 주셨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안식(태평)을 약속한 것은 오래 전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오랜 시련의 세월을 거친 후에야 비로소 그러한 안식을 얻었다. 하나님의 영적 이스라엘이 모든 수고로부터 안식하게 될 날이 이를 것이다. 2.솔로몬은 이를테면 약정서의 뒷면에 이행확인 도장을 찍는다: 그 모든 좋은 약속이 하나도 이루어지지 아니함이 없도다(56). 그는 모든 이스라엘의 이름으로 하나님의 약속이 완전히 이행되었음을 확증하는데, 그러한 확증은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드러내면서 동시에 하나님의 약속을 의뢰하는 모든 자들을 격려하기 위한 것이었다.

 

2.57절부터 60절까지에 나와 있는 솔로몬의 네 가지 기도와 그 의미들을 서로 대화해 보십시오. (왕상8:5760, 28:15. 72:17-19)

)매튜핸리주석-II.솔로몬은 자신과 회중을 축복하면서 다음과 같은 네 가지 소망과 바람을 피력한다. 1.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옵소서. 교회와 나라와 모든 개인에게 있어 하나님의 함께하심이야말로 참된 복의 시작이며 끝이다. 이 큰 회중도 곧 흩어질 것이며, 아마도 그들이 다시 모이는 일은 없을 것이었다. 따라서 솔로몬은 그들을 해산시키면서 다음과 같이 축복한다.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계시옵소서. 그러면 우리가 흩어져 있을 때에도 그것이 우리에게 충분한 위로가 될 것이나이다.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 조상들과 함께 계시던 것 같이 우리와 함께 계시옵고 우리를 떠나지 마옵소서(57).” 2.하나님의 은혜의 능력이 우리와 함께 계시옵소서. “여호와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옵고 계속해서 계시옵소서. 그것이 우리의 영토가 확장되고 부가 증진되기 위함이 아니나이다. 다만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심으로 인해 우리의 마음이 주께 향하고 그의 모든 길로 행하며 그의 모든 계명을 지키게 되기 위함이나이다(58).” 영적인 축복이야말로 최고의 축복이며, 우리가 열심히 추구해야 마땅한 축복이다. 우리의 마음은 천부적으로 마땅히 행해야 하는 의무를 싫어하며,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려고 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한 마음을 하나님께 향하도록 만드는 것은 다름 아닌 하나님의 은혜ㅣ며, 우리는 그러한 은혜를 기도로써 얻어야만 한다. 3.제가 드린 기도를 응답해 주옵소서. “여호와 앞에서 내가 간구한 이 말씀이 주야로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가까이 있게 하옵소서(59). 지금 드린 모든 기도가 은혜 가운데 그대로 돌아오게 하시며, 계속적인 응답이 이루어지게 하소서.” 여기에서 솔로몬의 기도는 그리스도의 중보의 기도의 예표이다. 그리스도의 강력한 중보의 기도는 주야로 우리 하나님 여호와 앞에 머물러 있다. 왜냐하면 우리의 크신 대언자께서 계속해서 이 일을 행하고 계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를 참소하는 모든 일에 있어 (주야로 우리를 참소하는 원수에 대항하여, 12:10) 그분을 의지할 수 있으며, 그분은 언제든지 자기 백성 이스라엘을 위해 대언하며 중보로 기도하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로부터 때를 따라 충족하며 시의적절한 은혜를 받게 될 것이다. 4.주의 나라가 확장됨으로 주께서 영광을 받으소서. “이스라엘이 이처럼 축복받고 이처럼 은초을 받게 하소서. 이는 세상 만민이 우리에게 조공을 바치게 되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솔로몬은 자신의 나라가 자기가 바라는 만큼 충분히 크다고 생각한다), 그들이 여호와께서만 하나님이시고 그 외에는 없는 줄을 알고 하나님께 나아와 경배하게 되기를 바람이나이다(60).” 솔로몬은 자기 아버지 다윗이 그랬던 것처럼 다음과 같은 기원으로 자신의 기도를 끝마친다(72:19): 온 땅에 그의 영광이 충만할지어다. 우리의 기도를 끝마침에 있어 아버지여 아버지의 이름을 영화롭게 하옵소서란 기원보다 더 좋은 기원이 어디에 있겠는가?

 

3.솔로몬이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낙성식을 행할 때에, 이만 이천 마리의 소와 십이만 마리의 양을 화목제의 희생제물로 드렸습니다. 그 날에 여호와 앞 놋단이 작았기 때문에, 솔로몬은 여호와의 전 앞뜰 가운데를 거룩히 구별하였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번제와 소제와 감사제의 기름을 여호와께 드렸습니다. 여기 이 말씀이 주는 영적인 진리를 묵상해 보십시오. (왕상8:62-64, 7:88)

)매튜핸리주석-I.그들은 하나님의 집에 있는 동안 풍성한 기쁨과 만족을 누렸다. 그것은 1.거기에서 솔로몬이 엄청나게 많은 제물 즉 22,000마리의 소와 120,000마리의 양을 제물로 드렸기 때문이었다. 이 정도의 숫자는 만일 그 땅이 풍성한 소산을 맺는 땅이 아니었다면 그 지역의 모든 가축의 씨를 말릴 정도의 엄청난 것이었다. 이교도들은 수백 마리의 희생제물로도 자신들이 매우 많이 드렸다고 생각하지만, 그러나 솔로몬은 그들을 훨씬 능가했다. 솔로몬이 드린 제물은 그들과는 단위가 달랐다. 모세가 제단을 봉헌할 때 드린 화목제물은 수소 24마리와 숫양과 숫염소와 어린 숫양을 합해서 180마리였다(7:88). 그 때 백성들은 매우 가난했다. 그러나 지금은 그들의 부가 크게 증가되었으므로 더 많이 드리는 것이 당연했다. 하나님은 많이 뿌린 곳에서 많이 거두기를 기대하신다. 이 모든 제물들은 하루에 드려질 수 없었으며, 여러 날에 걸쳐 나누어 드려졌다. 솔로몬의 하루 식탁에 수소 30마리가 올랐지만, 그러나 하나님의 제단에는 하루에 수천 마리씩 드려졌다. 이와 같이 극소수의 사람만이 육체보다 영혼에 더 많은 마음을 기울인다. 화목제물의 고기는 드리는 자의 몫이었는데, 아마도 솔로몬은 이것으로 백성들을 대접한 것으로 보인다. 그리스도께서도 자신에게 나아오는 자들을 배불리 먹이셨다. 놋 제단은 이 모든 제물들을 용납하기에 너무나 작았다. 따라서 그들은 많은 제물들을 성전 앞뜰 가운데서 드리지 않을 수 없었다(64). 어떤 이들은 이 때 흙이나 돌로 제단들을 세웠다가 절기가 끝난 후에 모두 철거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반면 어떤 이들은 맨땅에서 제물을 드렸을 것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하나님께 풍성한 제물을 드리고자 하는 자들이 공간의 협소함으로 인해 그러한 마음을 포기할 필요는 없다.

 

 

*참고성경구절

6:33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11:36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영광이 그에게 세세에 있으리로다 아멘

28:15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찌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신지라

72:17-19 그 이름이 영구함이여 그 이름이 해와 같이 장구하리로다 사람들이 그로 인하여 복을 받으리니 열방이 다 그를 복되다 하리로다 홀로 기사를 행하시는 여호와 하나님 곧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찬송하며 그 영화로운 이름을 영원히 찬송할찌어다 온 땅에 그 영광이 충만할찌어다 아멘 아멘 이새의 아들 다윗의 기도가 필하다

7:88 화목제물로 수소가 이십 사요 수양이 육십이요 수염소가 육심이요 일년 된 어린 수양이 육십이라 이는 단에 기름 바른 후에 드린바 단의 봉헌 예물이었더라

 

  • 한미선 2019.09.01 20:33

    "놋제단이 너무나 작았다" 그 무엇에 있어서나 "너무나 작았다" "부족하였다"라는 말을 들을라 칠때면 그것은 언제나 그리스도 안에서의 풍성함과 비교됩니다.. 주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이루신 죄 용서함, 주님의 죽으심 안에서 이루어진 죄 용서의 풍성함 을 생각하면 "너무나 작았다"는  은혜 안에 없는 단어가 됩니다.... 그 무슨 죄악도, 이 세상에 어떠한 죄악도 , 온 세상에 죄악을 담은 주님의 죽으심의 십자가는 그 놋 제단은 결코 너무도 작지 않은, 마침내는 결국은 너무도 큰 제단이기 되기 때문입니다!!

  • 이창섭 2019.09.02 11:15
    어제 성경공부 시간에 미선자매님이 말씀해 주셨던 부분이 깊은 감동으로 다가옵니다.
    너무도 많은 제물과 제사 때문에 "여호와의 전 앞 뜰"에서 드려졌던 제사를 생각할때에
    그들이 그 자유함 가운데 드렸을 제사가 어떠했을지 (하나님의 구원과 자비, 은혜에 대한 감격과 참된감사의 마음을 담아) 깨달아 진다고 하셨는데요,
    구약의 율법으로서 제사제도의 엄중함을 생각할때에 더욱 그러합니다.
    율법안에 하나님께서 감추어 놓으신 복음의 비밀이,그 은혜와 자비, 평화와 안식이 밝히 드러나는 장면 인것 같습니다.

    어제 본문은 순전하게 드려지는 제사의 가장 빛나는 모습을 보여주는것 같습니다.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자들의 영적 자유함과 평화를, 이와 같이 성전 낙성식의 솔로몬의 제사를 통해서 드러내 주신 하나님의 선하심을 다시금 깊이 깨닫는 시간 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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